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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조선 후기 일생 의례복식
1. 시대적 배경
1-1. 정치·사회적 배경과 복식
조선 후기는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 이후 정치적으로는 점차 세도정치가 강화되고,
사회적으로는 양반 중심의 신분제가 고착화된 시기입니다.
이 시기 복식은 신분의 위계를 명확히 나타내는 수단으로 기능하였으며,
특히 유교적 이념에 따라
예의와 질서를 중시하는 의례 복식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실용성과 장식을 모두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
일반 백성들도 생활 수준에 따라 일정한 품위를 갖춘 의복을 갖추려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는 일생의례복식—즉, 출생, 성장, 혼례, 상례, 제례 등의 의례에서 착용하는 복식에도 반영되어,
유교적 예법에 따라 정해진 복식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1-2. 복식문화 관련 자료
조선 후기 복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는 『국조오례의』,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규합총서』, 『여사서』 등과 같은 의례서나 풍속서, 여성 실용서가 있습니다.
특히 『규합총서』는 여성의 생활 전반을 다룬 책으로, 일생의례와 관련한 복식 정보가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실물자료로는 조선 후기 무덤에서 출토된 유아용 저고리, 두렁치마, 쓰개류 등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출생, 백일, 첫돌 복식
2-1. 출생의 복식 – 배냇저고리 & 두렁치마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입히는 옷이 바로 배냇저고리입니다.
이는 신생아의 체온을 유지하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과 더불어,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 배냇저고리는 대체로 무명이나 삼베로 만들며, 바느질이 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아기의 복이 '꿰매지지 않고' 잘 풀리기를 바라는 의미에서입니다.
- 두렁치마는 아기에게 덮어주는 일종의 포의(包衣)로, 긴 사각형 천을 두 겹으로 둘러 몸을 감싸며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흔히 붉은색이나 오방색 천을 사용하여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하였습니다.
2-2. 백일 복식
아기가 백일을 맞이하면 백일잔치를 열고 백일복을 차려입힙니다.
- 남아와 여아 모두 색동저고리를 입히는 경우가 많으며, 안에 속곳과 단저고리를 겹쳐 입히기도 합니다.
- 머리에는 쓰개류를 착용합니다. 여아는 조바위나 굴레, 남아는 호건이나 남바위를 씁니다.
- 신발은 꽃신이나 금박신을 신깁니다.
2-3. 첫돌 복식
돌잔치는 생일의 시작이라는 의미 외에도, 아이가 한 해를 무사히 넘겼음을 축하하는 의식이었기에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복식도 화려하고 상징적이었습니다.
- 남아는 색동저고리에 청색이나 남색 마고자, **돌띠(돌삼)**를 두르고, 호건이나 남바위를 씌웁니다.
- 여아는 색동저고리에 홍색 치마, 굴레나 조바위를 씌웁니다.
- 장식으로는 노리개, 띠장식, 돌고리(돌 금은 장신구) 등을 사용하며, 상징적으로 복을 기원하는 문양이 담긴 자수가 들어간 옷이나 장신구가 많습니다.
복식 외에도 돌상에는 아이의 장래를 점치는 돌잡이 행사가 포함되어 있어,
복식은 단지 예복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복되게 열어주는 하나의 장치로 여겨졌습니다.
3. 관례복식
관례(冠禮)는 남자의 성인식을 뜻하며, 여자의 성인식은 **계례(笄禮)**라고 합니다.
이는 유교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례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남녀는 성인으로 인정받고 정식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3-1. 남자의 관례복식
남자의 관례는 대개 15세~20세 사이에 치러졌으며,
이때 ‘갓’을 쓰게 됨으로써 사회적으로 성인 남성으로서의 지위를 갖추게 됩니다.
- 복식 구성:
- 심의(深衣) 또는 유건(儒巾)과 도포: 관례 당일에는 유학자의 예복인 심의 또는 흰 도포를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의례의 격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 갓(관): 의례의 핵심으로, 관례의 의미 자체가 '갓을 씌운다'는 뜻입니다.
- 처음에는 상투를 틀고, 초립(草笠) → 흑립(黑笠) → 갓으로 3차례에 걸쳐 갓을 바꾸어 씌우는 절차가 있습니다.
- 허리띠와 신발: 통상 **가죽띠(혁대)**를 착용하고, 태사혜 혹은 **흑피혜(검정색 가죽신)**를 신었습니다.
- 의미: 관례는 남자의 책임과 도리를 다할 준비가 되었다는 선언이며, 이후 이름도 자(字)를 지어 부르게 됩니다.
3-2. 여자의 계례복식
여자의 성인식인 계례는 대개 15~16세 경, 혼례를 앞두고 치러졌으며,
머리에 쪽을 틀고 비녀를 꽂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행위입니다.
- 복식 구성:
- 저고리와 치마: 계례복은 화려한 혼례복보다는 단정한 홍색 치마와 녹색 저고리, 혹은 무채색 조합으로 입었습니다.
- 비녀: 계례에서는 처음으로 머리를 올려 쪽을 틀고 **비녀(笄)**를 꽂습니다. 이는 여성이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성인 여성임을 상징합니다.
- 머릿수건 또는 댕기: 계례 전에는 머리를 댕기로 땋았지만, 계례 후에는 쪽을 틀어 올림머리를 고정합니다.
- 의미: 여성이 어른이 되었음을 상징하며, 이후 혼인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혼례복식
조선 후기 혼례는 유교의 ‘예(禮)’를 바탕으로 매우 엄격하게 진행되었으며,
신랑과 신부는 각각 정해진 복식을 착용해야 했습니다.
4-1. 신랑의 복식
- 사모관대(紗帽冠帶): 신랑의 혼례복으로 가장 대표적인 복식입니다.
- 사모(紗帽): 네모난 형태의 복두로, 벼슬아치나 유생들이 쓰던 모자.
- 단령(團領): 원형 깃의 긴 예복으로 검정색이나 남색을 사용하며, 옷고름을 달지 않고 허리띠로 여밈.
- 대(帶): 관대(허리띠)를 매어 격식을 갖춥니다.
- 흑피혜(黑皮鞋): 검은 가죽신으로, 관복과 짝을 이룹니다.
- 사모(紗帽): 네모난 형태의 복두로, 벼슬아치나 유생들이 쓰던 모자.
※ 양반가나 중인층 이상에서는 신랑의 혼례 복식이 사대부 관복에 가까운 형태를 띠며, 전통을 중시했습니다.
4-2. 신부의 복식
- 활옷(闊衣): 신부의 대표적인 혼례 예복입니다. 왕비의 예복인 적의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인 옷입니다.
- 색상: 주로 붉은색 계열(홍색, 진홍색)이며, 연두색이나 자주색 곁깃을 두르기도 합니다.
- 문양: 봉황, 모란, 박쥐, 구름 등 길상문양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 족두리: 머리 위에 얹는 관 모양의 장식.
- 용잠: 머리 장식으로, 옥이나 금으로 된 잠자리 모양 장신구.
- 화관 또는 화첩: 신분에 따라 화관(꽃관)이나 화첩(화려한 장식)을 착용하기도 합니다.
- 홍색 치마와 녹색 저고리: 활옷 외에 색동 치마저고리를 받쳐 입기도 합니다.
- 족두리와 연지곤지: 이목구비의 중심을 강조하고, 부귀다남(富貴多男)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화장도 함께 합니다.
5. 수연례(壽宴禮)와 회혼례(回婚禮)의 복식
수연례와 회혼례는 장수를 축하하거나 부부가 오랜 세월을 함께한 것을 기념하는 경사스러운 의례입니다.
따라서 이때 입는 복식 역시 화려하고 품격 있게 갖추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5-1. 수연례 복식
**수연례(壽宴禮)**는 60세(회갑), 70세(고희), 80세(산수), 90세(졸수), 100세(기이) 등의
장수를 기념해 베푸는 잔치입니다.
이때 주인공은 복을 상징하는 옷을 입습니다.
- 남성
- 단령(團領): 주로 남색이나 자주색 단령을 착용하며, 벼슬했던 경우 관복을 그대로 착용하기도 합니다.
- 사모, 관대: 벼슬한 지위에 따라 사모관대를 갖추며, 전통 예복을 착용합니다.
- 보(袍): 격식을 다하지 않는 경우, 화려한 색상의 도포나 보를 입고 자리를 빛냈습니다.
- 여성
- 홍색 치마, 녹색 저고리: 가장 기본적인 예복으로, 복색의 대표 조합입니다.
- 당의 또는 장옷: 어깨를 덮는 겉옷으로, 자수를 놓아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 족두리, 노리개, 뒤꽂이 등 장신구도 품위 있게 착용하였습니다.
- 공통 요소
- 복색은 일반적으로 **붉은색 계열(홍색, 자주색, 금색)**을 사용하여 복과 장수를 상징합니다.
- 장수문, 박쥐, 수복강녕(壽福康寧) 등의 자수가 들어간 복식도 흔했습니다.
1-2. 회혼례 복식
**회혼례(回婚禮)**는 부부가 혼인한 지 60주년을 맞이하여 치르는 의례로, 매우 드문 경사였습니다. 따라서 이때의 복식은 결혼 당시의 복식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꾸며졌습니다.
- 남편
- 사모관대, 단령, 또는 평상복의 예복화된 형태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 혼례복을 상징적으로 착용하며, 대개 색상은 백색 또는 밝은 톤으로 품위 있게 구성합니다.
- 아내
- 활옷, 화관 또는 족두리, 홍색 치마·녹색 저고리 등 혼례 당시의 복식을 간소화하여 착용합니다.
- 화장법 역시 연지곤지를 포함해 혼례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 특징
-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 잔치를 열고, 예복을 차려 입혀주는 것이 전통입니다.
- 의복에는 쌍희(囍) 문양, 수복 자수 등을 넣어 경사와 장수를 함께 기원합니다.
6.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복식
조선은 유교적 예법을 중시한 사회였기에,
상복과 제례복은 개인 감정을 넘어서 예의와 의무로 간주되었습니다.
복식 또한 엄격한 규범에 따라 착용되었습니다.
6-1. 수의(壽衣)
수의는 임종 전 또는 사망 후 고인을 위해 마련하는 장례복입니다.
- 재료: 삼베(모시), 무명, 비단 등. 유교적 관념에 따라 생전에는 비단을 입되, 사후에는 삼베를 입는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 구성:
- 남성: 저고리, 바지, 중의(속옷), 도포, 수건, 허리띠 등
- 여성: 속곳, 저고리, 치마, 겉옷, 머릿수건 등
- 신발: 짚신이나 삼베로 만든 운혜(雲鞋)
- 색상: 대체로 흰색이나 무색의 삼베. 검박함과 단순함을 미덕으로 여김.
- 특징: 수의는 고인의 신분에 맞추되, 지나치게 사치하지 않도록 조절하며, 효성을 다하는 마음이 중요시되었습니다.
6-2. 상례복식
상례(喪禮)는 상을 당한 유족들이 입는 복식으로, 복의 형태와 재질, 크기에 따라 유교적 위계 질서를 반영합니다.
- 상복(喪服)의 종류는 곡의 대상(부모, 조부모, 형제 등)에 따라 다릅니다.
- 심상(深喪): 부모 상에는 가장 무거운 예복을 입음.
- 삼베로 만든 대렴(大斂), 포(布), 백포 두건, 두건 띠, 짚신 등 착용
- 소상(小喪): 조부모나 형제 등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복식 착용
- 심상(深喪): 부모 상에는 가장 무거운 예복을 입음.
- 특징: 상복은 옷의 끝단을 마감하지 않거나 풀어헤치는 등, 슬픔과 단절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허리띠를 헐겁게 묶거나, 짚신을 신는 것도 근신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6-3. 제례복식
제사는 조상에게 정성을 다해 올리는 의례로, 제복은 단정하고 청결해야 하며, 격식이 중요시됩니다.
- 남성 제복
- 백의(白衣) 또는 청색 도포, 유건, 흑피혜
- 벼슬이 있는 자는 관복을 입고, 상복을 벗은 후 정제된 복장을 착용합니다.
- 특별히 제사를 위한 **제복(祭服)**을 따로 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여성 제복
- 흰 저고리, 흰 치마, 당의 등 깨끗한 색상과 단정한 형식을 중시
- 머리는 올리고 얌전하게 묶으며, 장신구는 생략하거나 최소화
- 공통 원칙: 화려한 색상과 장식은 피하고, 절제된 복장으로 정성을 표현함.
요약
구분복식 특징수연례 장수를 기리는 화려하고 품위 있는 복식 (홍색·금색, 자수 문양 등) 회혼례 혼례복을 재현, 부부의 장수를 축하하는 복식 수의 고인을 위한 장례 예복, 삼베 소재, 흰색 중심 상례복 유족의 복식, 삼베 상복, 신분·관계에 따라 위계 있음 제례복 단정하고 절제된 복장, 흰색·청색 도포, 장식 최소화 개항 이후 일생의례 복식의 변화
개항(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조선 사회는
근대화와 함께 서구식 문물, 일본식 제도와 복식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전통 의례복식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일생의례 중에서도 특히 혼례, 상례, 제례복식에서 그 변화가 두드러졌습니다.
1. 혼례복식의 변화
① 서양식 예식 도입
- 개항 이후 기독교, 서양문화가 전파되면서 **서양식 예복(웨딩드레스, 턱시도)**가 일부 상류층 및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등장.
-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서양식 결혼식이 공식적 의례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② 전통 혼례복의 간소화
- 이전에는 신부가 활옷, 족두리, 화관 등을 갖추고 복잡한 혼례 절차를 밟았지만,
→ 색동한삼에 치마저고리, 간소화된 활옷 형태로 줄어들었고
→ 신랑은 두루마기나 양복으로 대체하는 사례도 생겼습니다.
③ 양장 혼용
- 1930년대 이후에는 혼례에서 한복과 양장을 혼용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 신부는 한복을 입고, 신랑은 양복과 넥타이를 착용하는 모습이 보편화되었습니다.
④ 사진관 예식
- 결혼식을 간소화하고, 사진관에서 혼례복을 입고 기념사진만 촬영하는 방식도 유행.
2. 상례복식의 변화
① 상복의 형식화 및 간소화
-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던 삼베 상복, 삿갓, 지팡이 등 전통 상복이 점차 사라짐.
- 개항 이후 근대화 정책과 함께 상복의 복잡한 위계가 간소화되었고,
→ **검은 양복 또는 흰 옷에 완장(상장)**을 착용하는 방식으로 바뀜.
② 일제의 장례 제도 개입
- 일제는 전통 유교식 상례를 비효율적이라 판단하여, 장례 제도를 개편.
- ‘국민장례준칙’ 등을 통해 장례기간 단축, 절차 간소화를 유도.
③ 여성 상복의 변화
- 전통 상례에서 여성은 치마저고리에 흰 장옷을 걸쳤지만,
→ 개항 이후에는 검은 두루마기, 흰 두건, 검은 장옷 등의 형태로 변화.
3. 제례복식의 변화
① 유교 제례의 축소
- 개화기 이후 유교 중심의 제례 의식이 신흥 종교(기독교, 천도교 등)의 영향으로 점차 축소됨.
- 이에 따라 제복도 격식을 덜 갖추는 방향으로 변화함.
② 제복의 간편화
- 기존에는 백의, 유건, 흑피혜 등 예복을 갖췄지만,
→ 근대 이후에는 일반 두루마기나 평상복, 양복으로 대체되기도 함.
③ 일본 제례 방식의 유입
- 일본식 제례(신사 참배 등) 문화가 일제강점기 중 강제로 전파되며,
→ 일부 지방에서는 기모노식 복장이나 일본식 장례·제례 형식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음.
정리 요약표
구분전통 복식개항 이후 변화혼례복식 신부 – 활옷, 족두리 / 신랑 – 사모관대 신부 – 색동한삼, 한복 + 양장 / 신랑 – 양복, 넥타이 상례복식 삼베 상복, 삿갓, 흰 띠 검은 양복 + 완장, 간편 상복, 장례 간소화 제례복식 백의, 도포, 유건 / 여성 – 흰 치마저고리 일반복 착용, 양복 혼용, 제례 간소화 또는 생략 '전통한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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